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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12/28 잇쵸의 첫파티 <와인과 바비큐파티.. 그리고 클래식>
- 2008/12/08 데라루즈의 음악에 맞춰 살사댄스의 향연!!
- 2008/12/07 잇쵸의 전사들
- 2008/12/07 폭탄 돌리기와 바통 터치 존(Baton touch zone)
- 2008/12/04 오케스트라 데라루즈 공연 2
주인장이 잇쵸멤버들 전원을 초대했다. 요코상이 말하기를 매년 년말에 한 번씩 꼭 초대한다는 거다.
그 동안 1년간 수고 많았고 내년에도 잘 부탁한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난 한 번도 아츠시상의 집에 간 적이 없었다. 1년 넘게 일한 잇쵸 멤버들은 최소 1번 이상은 가본 적이 있었다. 잇쵸에서 내가 기억하는 아츠시상은 양파냄새에 절은 모자를 푹 눌러쓰고 간장, 카레냄새가 배인 앞치마 두른 조그만 식당주인에 불과했다. 하지만, 잇쵸 밖에서 그를 만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더군다나 집은 ?
아츠시상이 알부자라는 이야기는 자주 들었었고 차도 고급기종을 몰고 다니고 있었다.
나는 매우 호기심이 일었고 잇쵸 멤버 몇 명과 만나서 함께 가기로 했다.
아츠시상집에 몇 번 간 적이 있다는 도모키에게 물었다.
“도모키상, 아츠시상 집 어때요?”
“놀랄 걸요? 잇쵸에서의 아츠시상 생각하면 안돼요”
자세히 이야기해주지 않고 씩 웃는다.
아츠시상의 집은 대중교통으로는 가기 어려운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래서 폐차직전의 작고 낡았지만 차를 유일하게 가지고 있었던 쇼의 차로 가기로 했다.
“미래의 유명 자동차전문 저널리스트의 차가 이게 뭐야?” 장난꾸러기 카나메군이 한 방 먹인다.
“얻어타는 주제에… 미국산 차의 수명이 다해가는 과정을 연구하는 중이야!”
카나메와 쇼의 나이차이가 불과 한 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아서 개와 고양이처럼 만나기만 하면 티걱태걱거렸지만, 둘이 제일 친했다.
쇼의 차을 타고 10분 정도 갔을까? 저쪽에서 주택가가 보인다. 집들이 생각보다는 훨씬 좋아보였다. 그 중 넓은 정원이 딸린 근사한 저택이 시야에 들어왔다. “설마 이 집은 아니겠지..” 하는데 “여기야, 저쪽에 세워” 도모키가 익숙하다는 듯이 주차할 자리까지 가리키며 함께 돈 모아서 산 선물이 들어있는 백을 든다.
프랑스풍인지 영국풍인지 알 순 없지만 우아하고 담백한 유럽풍의 저택이었다. 그의 집에 문열고 들어서자 아츠시상은 베이지색 실크셔츠와 상큼한 향수냄새를 날리며 프랑스귀족처럼 우리를 반갑게 맞이했다.
이 사람이 진정 아츠시상이 맞단 말인가?
난 순간적으로 짧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2층 집이었는데 2층 베란다는 무척 넓어서 마치 정원 같았다. 그 곳에서 바베큐를 굽고 있었고 전망도 좋아 파티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났다. 큰 응접실에는 벽돌형 난로에 장작이 타고 있었고 클래식음악이 우아하게 흐르고 있었다.
코코상은 부엌에서 뭔가를 만들고 있었다. 우리가 들어가자 환한 미소로 응대했다. 아츠시상은 계속 감탄사를 남발하고 있는 잇쵸 멤버들을 데리고 자기 집을 이쪽 저쪽 구경시켜 주었다. 압권은 지하창고에 있는 와인저장소이었다. 일개 개인의 창고에 그렇게 많은 와인은 처음 보았다.
와인열풍이다. 와인에 대해 저마다 한마디 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한 번
와인상식에 대해 배워볼까?
아츠시상은 클래식과 와인의 대단한 애호가였다. 몇 몇 와인을 설명해주고 그 중 몇 병을 집어들더니 바비큐에는 이 와인이 가장 적격이라고 했다. 모두들 와인에 대해선 까막눈이니 뭐라고 해도 알 턱이 없었지만 왠지 아츠시상이 멋지게 보이는 듯 했다.
그는 일본에 있을 때 원래 건축과 지망생이었다. 무슨 연유인지 미국에 유학을 온 후 진학을 준비하다가 어느 날 집으로부터 돈을 좀 받아 식당을 차렸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응접실 선반에 건물 미니어쳐가 몇 개 놓여있었다.
도모키가 부엌으로 가더니 코코상에게 말레이지아식 밥을 만들어 보이겠다고 한다. 도모키는 말레이지아에서 중고등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잇쵸 멤버 각자가 준비해 온 음식을 꺼냈다. 물론, 초대는 아츠시상이 했고 메인 파티요리는 코코상이 하지만, 일본인들이 파티할 때는 보통 각자가 뭔가를 하나씩은 들고 가는 경우가 많다.
그 것들이 모아지면 메뉴가 풍성해지고 함께 서로의 것을 나누는 기쁨도 있고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인이 요리를 다 마련해야 하는 부담도 덜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도모키는 말레이지아밥, 아미짱은 일본전통과자, 난 한국수퍼에서 작은 병에 넣고 파는 김치, 노리코상은 주부답게 니쿠쟈가 (にくじゃが - 肉じゃが)를 만들어왔다. 니쿠쟈가 는 일본의 대표적인 가정요리로 주로 고기와 감자를 넣어서 만드는 요리다. 우리가 김치찌개 만들어 먹는 것처럼 일본의 보통 집에서 많이 해 먹는다.
니쿠쟈가 만드는 법을 배워보자.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
먹음직하게 구워진 바비큐, 코코상이 만들어 준 일본요리와 와인 그리고 클래식 음악… 모든 것이 일체가 되어 잇쵸 멤버들 모두가 즐거워했다. 나도 이젠 잇쵸 일도 웬만큼 익숙해져 큰 어려움은 없었고 따뜻한 난로가에서 와인이 들어가니까 모든 긴장이 눈이 녹듯이 사라지는 듯 했다.
응접실 벽에 걸려진 사진 액자속에는 보스톤 심포니오케스라 상임지휘자인 오자와 세이지(小澤征爾)와 다정하게 포즈를 취한 아츠시상이 우아하게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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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타상 이 아무래도 라틴음악의 황제 티토 퓨엔테 를 연구를 많이 한 모양이다. 그의 연주를
보고 있으면 티토 퓨엔테가 연상이 된다. 그는 노라상 와 함께 유일하게 남아있는 데라루즈의
초창기 멤버다. 노라상과는 25년 을 함께 했다. 대단하지 않은가?
이렇듯 일본 밴드들 중에서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밴드가 적지 않다. 한국에선 이름도
기억하기 어려운 수많은 밴드들이 짧은 기간동안에 무수히 뜨고 진다. 팬들이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함께 늙어가는 아티스트를 옆에서 보기 힘든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속에 일본의 노장밴드들이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온다.
역시 살사음악의 진정한 매력은 춤과 함께다!! 데라루즈의 흥겨운 음악에 맞춰 살사인들이
살사스텝을 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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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빠라 빵~~” “둥둥둥둥~~”
“적군이 쳐들어온다!” “돌격하라!!”
난 잇쵸에 갈 때마다 마치 전투에 나가는 기분이었다. 일할 때의 팽팽한 긴장감, 스피드한 몸놀림, 런치타임이나 디너타임때 물밀듯이 들이닥치는 손님들을 단 4명이 해치워나갈 때 마치 얼마 전에 상영했던 300 이라는 영화에서 등장하는 백만대군인 적군을 일사불란하게 처치하는 스파르타군 처럼 나 자신을 느낄 때가 있었다.
더군다나 신참이 없이 2년 가까이 잇쵸에서 일한 소수정예들과 함께 배정이 된 날은 정말 일할 맛이 났다. 빗발치는 주문의 외침에 따라 수많은 재료과 연장들이 날아다니며 고객이 원하는 작품이 속속 빗어졌다. 생선를 굽는다는지 굴을 튀겨야 한다든지 재료에 따라 일정시간이 꼭 필요한 메뉴를 제외하고는 거의 1분 안에 승부를 냈다.
심지어는 단골 손님의 자주 시키는 메뉴를 미리 알아두었다가 웨이트리스에게 주문하는 손님의 입 모양만 보고 번개처럼 후다닥 만들어서 웨이트리스의 외치는 메뉴의 이름이 끝나기도 전에 요리를 내놓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그렇게 하기까지 그 좁은 공간 안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는 가운데 칼에 베이고 기름에 데이는 등 꽤 쓰라린 훈련과정이 필요했다. 처음 3개월은 매우 힘들다가 6개월째는 일이 조금 손이 잡히기 시작하며 대략 1년쯤 일하면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르고 그 동안 일한 시간에 따라 다르지만 적응이 되어 그다지 힘들지 않게 된다.
그러다가 1년 반이 지나면 글쎄.. 손에 연장이나 재료가 쫙쫙 붙는다고나 할까?
처음 3개월 동안은 팔뚝과 손에 반창고가 수두룩했다. 팔뚝은 주로 데어서 난 상처들이고 손은 베어서 난 상처들이었다. 잇쵸가 워낙 좁고 할 일이 많아 바삐 움직이기 때문에 내 몸의 움직임이 적절한 행동라인에 자리잡지 못하면 여기저기서 부딪히고 찧이는 것이 다반사였다. 그래서 잇쵸에는 항상 반창고서부터 연고까지 다양한 약이 들어있는 구급약상자가 구비되어 있었다.
베인 곳에 반창고를 붙일 때면 마치 전쟁을 치르다 부상을 당하여 치료를 받는 기분이 들기도 했었다.
난 한 때 스파르타식을 동경한 적이 있다. 20대 시절, 스파르타식으로 내 자신을 몰아칠 때
느꼈던 고통. 그리고 그 것이 오히려 쾌감으로 다가왔던 기억. 그 수많은 기억이
나를 단련시켜준 것 같다. 젊을 때 스스로 몸의 한계를 극한까지 경험하는 것은
인생 전반에 걸쳐서 매우 소중한 체험 중 하나라고 나는 확신한다.
고객감동과 매출상승이 곧 승리이다.
신입 때 나를 긴장하게 만든 것은 한꺼번에 손님이 몰아닥칠 때, 아직 익숙치 않은 메뉴이름이 백만대군의 페르시아군이 한꺼번에 쏘아대는 화살떼처럼 내 귓가 주변을 어지럽게 날며 맹공격을 할 때였다. 메뉴를 놓치는 때도 많았다. 외국인이라서 천천히 불러주는 것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잇쵸는 어차피 팀웍으로 일이 진행되기 때문이었다.
일본인들이 가장 죄악시 여기는 것은 소위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는 것이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 잇쵸 초창기에는 늘 귀에 쫑긋 안테나를 세우고 온 몸에는 초민감 센서를 구석구석 매단 것처럼 초긴장하고 일에 임할 수 밖에 없었다.
사실 난 군대 있을 때 6개월가량 취사병으로 일한 적이 있다. 그 후 밴드부와 수송부로 옮겨져서 남들보다 다양하게 군생활을 한 편이다.
그런데 그 때 취사병으로 일했을 때가 다른 보직보다 상당히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잇쵸에서 일의 강도는 군대에서 취사병으로 일했을 때를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군대에서야 메뉴가 많은 것도 아니고 그냥 매일 편성된 메뉴에 따라 만들면 되지만 잇쵸에서는 50개나 되는 메뉴를 소화해야 했다.
일본을 제대로 알기 전에는 일본 남자들이 군대에 안가는 것에 대해 부러움에 찬 눈으로 보곤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다지 부러워하지 않는다. 왜? 일본사회 자체가 군대같으니까! 한국남자는 눈 딱감고 2년만 갔다오면 되지만, 일본남자는 사회에서 평생 군대생활을 해야 한다.
서로 잘 모르는 남자들이 군대에서 만나 같이 힘든 일을 경험하면서 동기애가 생겨난다. 마찬가지로 잇쵸에서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의 강도와 다 같이 힘을 합쳐 일할 수 밖에 없는 시스템은 매우 두터운 동지의식을 길러주었다.
전체적으로 개개인이 일한다는 느낌보다는 하나의 바퀴가 굴러가듯, 한 호흡을 가지고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사물놀이를 연주하듯이, 꽹과리, 장구, 북, 징 이 한데 어우러져 신명나게 한바탕 놀았다고나 할까?
준짱의 1분 노트>>
일본의 회사에서 일할 때는 사적인 것이 전혀 용납이 안된다. 사적인 전화에서부터 담배피우는 것 까지 업무와 관계없는 행동들은 금지되어 있다. 자기에게 맡겨진 일에 대해서는 혀를 내두를 정도로 철저히 완벽을 기한다.
하나의 실수도 용납이 되지 않는 분위기다. 그래서 한국에서 오래 생활하다가 일본에 돌아간 내 일본친구들은 한국의 느슨함(?)과 실수에 대한 관대한 포용력(?)이 그립다는 말을 자주 한다.
말하지 않았는 가? 일본 사회는 그 자체가 군대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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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온다고?”
카나메군으로부터 아침에 전화가 왔다.
스케이드보드 마니아인 카나메군이 전날 스케이트보드를 동네 흑인친구와 함께 타다가 넘어져 골절상이 났다는 거다. 오늘은 토요일이고 저녁 때라면 한창 손님이 몰릴 시간이다. 토요일이라면 많을 때는 잇쵸 멤버가 5명까지도 동원될 만큼 바쁜 요일이다. 그런데, 지금 4명 일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그 중 한 명이 못 온다는 것이다.
“지금 전화해서 다른 멤버들 중 오후에 나올 수 있는 사람 알아볼까요? “ 아미짱이 도모키에게 물었다. 하지만, 모두 일하면서 공부하고 있는 유학생들이라 각자 스케쥴이 바빠서 지금 전화한다고 해도 바로 지원인력이 나와줄 지도 의문이다. 게다가 오늘은 약속 많은 토요일이다.
도모키상은 잠깐 생각하는 가 싶더니 바로 오후반에서 할 일을 미리 앞당겨서 지금 멤버들에게 분배시켰다.
오후반이 할 일의 상당부분을 지금 미리 처리해 줌으로서 부족한 일손을 메꿔주는 것이다.
잇쵸의 일은 상당히 세분화되어 모듈화되어 있기에 일을 분배하기 매우 편했다. 물론, 오전반 일을 해가면서 오후반 일을 더 한다는 것은 분명 일이 늘어난 것임에는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 일들을 오전 반 멤버들의 틈이 나는 시간대를 적절히 활용해서 배치함으로서 그렇게까지 부담스럽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초심자를 제외하고는 어느 정도 경력이 되는 잇쵸 멤버들은 대부분 여러 포지션에서 일할 수 있도록 훈련되어 있다.
한마디로 멀티플레이어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얼마 전 중국 베이징올림픽 때 육상으로 돌풍을 일으킨 나라가 있다. 자메이카다. 단거리 트랙을 차례로 휩쓸더니 남자 릴레이도 우승을 차지했다. 그 못지않게 우승이 유력시되던 여자 400M 릴레이 결승이 있었다. 그러나 어처구니없게도 바통터치과정에서 실수를 범해 메달권 진입에 실패했다.
이렇듯 릴레이 경기를 하다보면 그 팀의 모든 주자가 월등한 실력을 갖추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그 팀이 이긴다는 보장이 없다. 왜냐하면 바통 터치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주는 쪽에선 바통을 상대방이 잘 받을 수 있도록 건네 줘야 하고 받는 쪽에서는 주는 쪽이 건네주기 편하게 손을 내밀어야 한다.
그 것이 일어나는 존(zone)이 바로 바통터치존 (Baton touch zone) 이다.
잇쵸 안에서도 릴레이 경기가 벌어지고 있었다.
바통을 잡기 편하게 건네주는 것처럼 다음 팀에서 일하기 편하도록 준비해주는 것이 서로를 위한 무언의 약속이었다. 정리정돈을 잘 해둔다던가, 쓰레기를 미리 비워둔다던가, 재료를 미리 다듬어 준비해 둔다던가 아주 사소한 일에서부터 비교적 부하가 걸리는 일까지, 수많은 일이 해당이 되었다.
이 날의 상황처럼 갑작스러운 펑크나 예측하지 못한 일이 발생하면, 그 전 타임에 있는 사람들이 알아서 일의 분량을 좀 더 해놓고 교대를 했다. 하지만,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닌 자발성이었다.
서로에 대한 깊은 배려라는 이름의 바통 터치 존이었다. 그 영역은 온갖 돌발상황에 대한 리스크 관리를 충실히 해낼 수 있는 완충지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그 것은 나에게 할당된 일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잇쵸가 돌아가는 시스템 안에서 자기 일을 이해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따라서 오전반은 오후반에 대해, 또 오후반은 오전반에 대해 서로들 일을 훤히 꿰뚫고 있기에 다음 팀에 대한 섬세한 배려가 가능하다. 그렇게 일을 하고 있으니 원할하게 일이 순환될 수 밖에 없고 동료애마저 생기게 된다.
너무나 친숙한 폭탄주 만들기~ 여러분 올해도 마지막 달을 남겨두고 있는 데 앞으로 몇 번이나
이런 순간을 맞이 하실런지? 망년회도 좋지만 건강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타이타닉주라고 아는가? 맥주를 따른 잔에 빈 소주잔을 띄워 소주잔이 가라앉을 때까지 돌아가며 양주를 따르는 폭탄주다. 소주잔이 가라앉게 되면 해당자리의 사람이 그 폭탄주를 마셔야 한다. 상당히 인기높은 폭탄주다.
한국사회도 폭탄 돌리기식으로 돌아가지 않는가라고 생각한 적이 많다
.
나만 안 걸리면 된다는 식의 무책임한 일 떠넘김이 너무 많다. 결과는 있지만 원인은 슬그머니 뱀꼬리 감추듯 사라지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정작 문제의 단서를 제공한 사람은 피해가고 분위기 파악 안되는 신출내기와 같은 전혀 엉뚱한 사람이 독박을 쓰는 것이다. 그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구조적으로 찾아가기 보다는 재수없이 걸린 한 사람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 씌워버린다.
그 사람은 한마디로 재수없이 걸린 것이고 문제의 다이나마이트는 또 다시 째깍거리며 다른 희생자를 찾아 폭탄돌리기를 시작한다.
얼마 전 신문에서 자동차로 유명한 모대기업 노조들간에 인력배치를 둘러싼 갈등이 첨예화되고 있다는 기사가 났다. 한마디로 서로 편한 보직을 받으려고 공장별 노동자들이 회사 앞에서 천막 농성을 벌이고 있다는 내용 이었다. 상대에 대한, 또 회사에 대한 고려는 눈꼽만큼도 없이 일단 내가 편하고 보자라는 생각이다.
한편, 그 기사 옆에는 이미 세계 넘버원이 되어있는 일본 모자동차회사 사례로 “일본 경제 회복의 주인공은 자민당이 아니라, T 자동차의 노조라고 할 것입니다.” “현재 세계 자동차 왕좌를 70년 만에 갈아치울 T 자동차는 천재적 경영자가 아니라 6만4000여 보통 노동자들이 만들었다고 합니다. “ 라는 기사로 거의 도배를 하고 있었다.
폭탄돌리기식 회사와 바통터치존이 존재하는 회사, 경쟁이 되겠는 가?
그래도 괜찮다고 ? 나만 안 걸리면 된다고?
이러다 모두 자폭하지나 않을 지 심히 우려가 된다.
준짱의 1분 노트>>
바통터치영역이 존재하는 기업, 폭탄돌리기식 기업.
당신의 기업은 어느 쪽 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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